열일곱 살 다향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통장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. 그 모습이 재밌어서 물었습니다.
“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어?”
“왜?”
“그냥. 궁금해서.”
“O백만 원 조금 넘어.”
“와! 언제 그렇게 돈을 모았대? 나보다 부자네.”
“……”

“아빠. 내가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?”
“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?”
“내가 어릴 때부터 말했잖아. 스무 살이 되면 나가 살라고.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서웠어. 혼자 어떻게 살지? 집이 없으면 서울역에 가서 자야 되나? 그게 너무 무서워서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고,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어.”
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.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으로 가슴도 떨렸습니다.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습니다.
“다향아, 그건 네가 스무 살 쯤에 독립할 힘을 가질 정도로 잘 자라주면 좋겠다는 거지 내쫓겠다는 게 아니잖아.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?”
“잘 알지. 얼마나 사랑하는지. 그리고 내쫓지 않을 거라는 것도. 하지만 어린이들은 그걸 알 수 없어.”
“……”

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돌봄노동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, 오랫동안 아이를 두려움에 떨게 했습 니다. 말 한 마디 허투루 하지 않는 어른이라야 좋은 부모가 되는 것 같습니다. 

오성근 객원편집위원  babsangmann@hanmail.net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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